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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옷 한복의 기본형, 한복의 역사

by HaDa, 하다 2021. 5. 7.

한복의 기본형과 한복의 역사를 알아보자

중국이 김치 뿐만 아니라 한복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복이지만 어떻게 한복이 중국복식이랑 다른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답없는 억지주장에는 차분히 논리로 맞서야 하겠죠, 그러기 위해서 한복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스키타이 복장

1. 신석기 시대의 의복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의복을 입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가죽 옷을 입었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삼 껍질은 꼬아 만든 실과 뼈바늘을 비롯하여 각종 동물 뼈로 만든 크고 작은 뼈바늘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에 이미 간단한 방직이 이루어졌음은 물론 어느 정도 '재봉된 옷' 을 입었다는 증거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지요.

 

신석기인은 주로 가공된 가죽이나 직물을 이용하여 만든 간단한 의복을 착용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2. 청동기 시대의 스키타이계 복장

보다 완성된 우리의 유고(補袴:저고리와 바지)의 기본 양식은 청 동기 시대의 스키타이계 복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 군현의 설치로 중국 문화권에 포섭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북방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계 문화권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키타이계 문화는 유목을 위한 이동 생활이나 기마 활동 등 유목 기마 민족 특유의 환경적 배경에 맞추어 창조되었으므로 농경 민족과는 현저하게 취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 상호간에는 분포 범위의 광대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그 중에서도 복식, 무기, 말 장식 등에서 비슷한 것이 많고 그들의 신앙 속에 강한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술품은 특유의 동물 의장으로 대표되며 주술성과 실용성이 가미되어 빠른 속도로 유라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3. 스키타이계 복식 문화의 전파

우리의 '한복' 은 스키타이계 복식 문화에 속하는 대표적인 옷으로, 이와 같은 유고 복장은 당시 스키타이족의 주 활동 무대였던 흑해 주변과 유럽 동북쪽을 비롯하여 북방 유라시아 스텝 지대를 지나는 '초원의 길' 을 통하여 각지로 전파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양 옷의 가장 대표적인 복장이라고 생각하는 슈츠 양식과 우리의 바지저고리 양식은 원류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임과 상하의 양식이 거의 동일한데, 이는 서양 옷과 우리 한복이 각기 다른 양식으로 발전해 왔지만 원류가 같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복의 구조선은 양복화할 때 다르면서도 공통의 양식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1. 고대한복과 그리스복의 차이점

우리 고대 한복의 원류로 생각되는 스키타이계 옷은 당시 서양의 대표 적인 복식인 그리스복과도 다르고 중국의 대표적인 복식과도 매우 다른 양식을 하고 있었음을 당시의 인물상과 유물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헤로 도토스는 「역사」 에서 "스키타이 왕의 한 사람인 스킬리스는 스키타이 왕이 스키타이 복장을 싫어해 혼자 그리스복으로 갈아입고 ······."라는 삽화를 통해 스키타이인의 복장이 그리스인과는 달랐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드레이퍼리형의 그리스복과는 다른 형태인 상하의 형식의 스키타이 복장은 수많은 고분 출토품에 새겨진 스키타이 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상하의로 구성되어 밀착된 형태의 복장으로 왼쪽으로 여미게 되어 있고(左班), 허리 부위에는 띠를 매게 되어 있죠. 이 복장은 원래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금판 장식(Gold Plaque)을 달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3-2. 스키타이계 복장과 중국복식의 차이점

중국에서 스키타이계 복장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무령왕이 호복령을 내려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주로 '호 복(胡服)' 이라는 명칭으로 착용하였습니다.

 

춘추 전국 시대 화상전(畫像博 벽돌에 그림을 새긴 것)에 새겨진 공자와 노자의 만남을 표현한 인물도나 전한(前漢) 시대의 마왕퇴 유물을 통해서도 당시 중국인들의 복식과는 기본 형태가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시 중국 한족의 대표적 의복인 포류(袍類)는 등 뒤로 돌아갈 정도로 깊이 여미게 되어 있고 바지가 곁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긴 겉옷을 착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4. 스키타이계 복장의 특징

이처럼 우리 복식의 원류를 이루는 스키타이계 복장은 몸에 꼭 끼는 형태로 말타기 등 활동에 편리한 상의와 하의를 기본 복장으로 합니다. '유(橘)' 는 원래 중국에서 길이가 긴 포에 비례하여 짧은 상의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깃의 양식과는 상관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착용한 스키타이게 상의는 곧은 깃의 앞이 여며지는 직령교임식(直領交紙 式)으로 엉덩이 선까지 내려오며 소매가 좁고 옷의 가장자리에는 장식선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하의인 고(袴)는 피혁제의 통이 좁은 형태가 기본형으로 생각되지만 재료의 변천에 따라 양식이 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죽을 사용하여 말타기 편리하도록 바지통을 좁게 만든 세고(細袴) 양식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인물 도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스키타이계 인물상에서도 흔히볼수 있습니다. 한편, 피혁제의 세고가 직물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말탈 때 밑이 터지 지 않게 당(福)을 댄 것이 궁고로 지칭된 것으로 추정되죠.

 

 

4-1. 중국의 개당고와 궁고

그런데 중국에서는 호복을 채용하기 이전에도 바지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는 앞뒤가 터진 개당고(開福袴)였습니다.

 

왕우청(王字清)은 중국의 바지에 대하여 "원래 한인(漢人)은 앞뒤가 터진 개당고를 입는 것이 상례이고 앞뒤가 막힌 궁고 를 입는 것은 예외에 속하는 일이다."라고 했죠. 또한 「전한서(前漢書)」에 "궁고는 앞뒤에 당(當)이 있는 것을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당이 부착되어 앞뒤가 막힌 형태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궁고의 착용 모습은 고분 벽화 인물도에 보면 뒤가 삐죽 나와 있어서 당을 부착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스키타이계에 속하는 몽골 노인-우라 출토 바지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를 볼 수 있으므로 궁고의 형태도 원류가 스키타이게 복장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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